[와이파일]"억대 연봉직을 늘려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의 그늘

[와이파일]"억대 연봉직을 늘려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의 그늘

2020.05.24. 오전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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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억대 연봉직을 늘려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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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탕! 가결을 선포합니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20일. 여야의 힘겨운 논의 끝에 처리하기로 합의한 100여 개의 법안이 공개됐습니다. 여야는 빠른 속도로 법안들을 처리해나갔습니다. 과거사법 개정안도 있었고, 코로나19 대책에 해당하는 법안들과 또 다른 n번 방 사건을 막기 위한 법안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국민적 관심을 받던 법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전체 3번째로 처리된 규칙 개정안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섭단체정책연구위원 임용 등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인데요. 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이란 소속 교섭단체 대표 의원의 지휘ㆍ감독을 받아 교섭단체 소속 의원의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이 어렵죠? 쉽게 말해 교섭단체란 의원 20명 이상을 보유한 정당입니다. 그 단체의 정책연구위원은 해당 정당 의원들이 법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 규칙에는 기존 67명인 정책연구위원 숫자를 77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10명에 숨은 디테일은 무엇일까요?


"교섭단체나 정당의 부장급 이상으로 재직한 자를 뽑는다" <교섭단체정책연구위원의 임용자격기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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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만드는 곳인 의회에서 법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보조하는 사람을 늘린다, 언뜻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제대로 법을 만들 수 있다면 10명이 아니라 20명, 조금 더 과장해 100명을 늘려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그 자리로 갈까요?

자격 기준을 확인해봤습니다. 1급에서 4급까지 모두 근무 기간이나 필요한 직급의 차이는 있었습니다. 공무원, 언론인, 변호사, 교수 등 다양한 기준이 있었지만 눈에 띄는 기준 하나, 바로 정당에서 일했던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가 있을까? 취재진은 현 시점에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이 67명을 나눠 각자의 몫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각 정당의 당직자들이었습니다. 일부는 각 당에서 공천을 받았다 낙선한 사람도 있었고, 당 정책연구소에 몸 담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정당을 출입하는 저희 같은 정치부 기자들이 종종 만나고 인사하는 당 관계자들이었던 겁니다.


A 의원 "당직자들의 인사 돌려막기 수단"… B 국회 관계자 "상임위 활동 대신 당 일만…"

[와이파일]"억대 연봉직을 늘려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의 그늘


왜 정당은 당에서 일하는 당직자들을 정책연구위원으로 배치할까요? 오랜 시간 정당활동을 한 한 의원은 취재진의 질문에 단순 명쾌한 답을 내려줬습니다. ‘당직자들의 인사 돌려막기 수단이다’라는 겁니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들이 상임위 활동은 안 하고 당 일만 하기도 하더라며 비판적 시선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당의 일을 하면서 월급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주는 자리를 만든 셈이었습니다.

이들을 늘리는 데 얼마나 돈이 들까요? 규칙 개정안이 처음 발의됐던 2016년 국회 예산정책처는 소요 비용을 추정했는데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70억이 넘는 돈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예상대로라면 모든 정책연구위원은 최소 억대 연봉이 보장됐습니다. 물론 물가가 더 비싸졌을 올해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연봉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 하나 숨은 혜택 하나. 각 위원은 자신이 있었던 급수대로 공무원연금도 받게 됩니다.


"재석 208인, 찬성 184인, 반대 13인, 기권 11인"

[와이파일]"억대 연봉직을 늘려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의 그늘


비용은 크지만 역할은 애매하다는 점 때문에 이 규칙 개정안은 그동안 난항을 겪어왔습니다. 앞서 전한 것처럼 2016년 발의돼 상임위와 법사위까지 통과했지만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했 거든요. 가뜩이나 국회, 정치인, 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은데 돈 드는 자리를 대거 늘린다는 비판을 견디기 어려웠겠죠. 그런데 이제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스리슬쩍 통과시켜버린 겁니다. 압도적인 찬성표와 함께 말이죠.

문득, 혈세를 낭비한다며 서로 싸우던 여야가 떠올랐습니다. 야당 출신 예결특위 위원장이 자기 지역구 예산은 챙겨놨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여당 의원들도 생각났습니다. 국민이 소중히 모아준 성금을 시민단체가 어떻게 쓴 것이냐고 호통치던 야당 국회의원도 스쳐지나갔습니다. 남이 쓴 혈세 1억은 크고, 내 식구가 쓸 혈세 1억은 더 작은 것일까요? 끝나가는 20대 국회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늘어난 연구위원들한테 주는 수십억 원, 모두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김주영[kimjy0810@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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