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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외롭고 소외된 동포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입니다.
김지연씨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전시회를 여셨죠?
제목이 조선학교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인터뷰]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고요.
2011년 3월 11일날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옛날에 관동대지진이 떠올랐고요.
그로 인해서 무고하게 학살된 동포들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도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또 누가 타겟이 될까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차별받고 있는 우리 조선학교, 우리 동포들에 대한 관심을 이번에는 가져보고자 지진 피해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앵커]
조선학교라고 하면 조총련이나 아니면 북한과 연관이 있어서 우리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현장에서 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인터뷰]
남한에서는 조총련계 학교라서 해서 더이상 알려하지 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가본 조선 학교는 우리가 함께 같이 가야 할 우리 학교 였어요.
조선 학교는 우리 1세대들이 일본 학교를 다니면서 엄청나게 차별과 모멸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한테만큼은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가르치고자 만든 작은 공부방에서부터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와서 이 학교가 북한 학교냐 라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고요.
같이 이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일본 내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우리 민족성을 지키려고 하고 있는 건지를 같이 들여다보고 우리가 같이 애정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제가 책을 내거나 이번 전시를 할때에 목표였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번 사진 전시회에서 카메라에 담으면서 어떤 모습들을 주로 담으려고 노력을 하셨나요?
[인터뷰]
이분들의 이미지를 잘 찍으려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고요.
그런 이미지들이 한국에서 가져왔을 때 아 다르지 않구나, 우리와 같구나 그런 울림이 있을 반향이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앵커]
사진전과 함께 이번에 사진집도 내셨죠.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이번이 몇번째죠?
[인터뷰]
사진집으로는 다섯번째요.
[앵커]
다섯번째요, 제일 첫번째로 냈던 사진집이 탈북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었거든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인터뷰]
이 사진집인데요.
99년도에 연변 근처에서 만난 탈북 아이들의 이야기에요.
[앵커]
99년도요.
[인터뷰]
99년도만 해도 보통의 매체들에서는 탈북 아이들을 조명하면서 쓰레기더미에서 쓰레기를 주워먹는 아이들이라고 극한적으로 다루던 때였어요.
제가 이 아이들을 막상 만났을때는 아, 우리 아이들이다 라는 느낌이 엄청 강했고요.
그 아이들이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서 목숨을 걸고 남의 땅까지 도망쳐나와서 그렇게 할때는 아, 이거는 동포애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된다, 라는 그런 관점으로 사진을 쭉 담았고요.
사실 이 작업이 제 작업중이 가장 어려웠던 작업인데...
[앵커]
왜 그러나요?
[인터뷰]
아이들이 사실 얼굴을 드러내기가 참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제가 영길에서 한 40일 있었는데 한 20일간은 카메라를 들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사진을 찍히는 순간 목숨과 연결이 되어있다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한 20일 동안은 아이들하고 놀고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하다가 아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것 자체가 현실이구나 라고 해서 그때부터 아이들을 커튼 뒤에 숨기던지 인형으로 얼굴을 가리던지 해서 촬영을 했습니다.
[앵커]
그동안 99년부터 쭉 사진 작업을 하시면서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 거 같아요.
뒤에 보니까 조선학교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고 하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신가 봐요?
[인터뷰]
조선학교가 이제까지 몰랐던 그런 많은 함축적인 것들이 담겨 있는 곳인데 이미 낯선 이방인이 카메라를 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정말 들풀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자라나고 있었고요.
저 학교 안에서의 저의 가장 큰 느낌은 아, 통일의 씨앗을 심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도착한날 비가 내렸는데요.
방사능비라고 한국에서는 휴교를 하고 있었을 때에요.
근데 아이들은 그냥 천진하게 그 비를 맞으면서 뛰어놀고 있는 거에요.
근데 이제 제가 학교 운동장에 자그맣하게 화분을 심어놓은 새싹들을 보면서 이 방사능 비에도 씨앗을 심듯이 우리 조상들은 조선학교에 통일의 씨앗을 심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앵커]
다큐멘터리 사진 쪽으로 들어선게 후회되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인터뷰]
매번 후회를 하죠.
[앵커]
어떤 이유 때문에요?
[인터뷰]
이 아이템 하나 하나들이 다 아파요.
아프고 힘든 작업들이고 그리고 이 대상들이 만나서 행복한 분들이 아니고 그 아픔을 듣고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저는 유지를 해야 되고 그런 과정에서 작업 하나를 끝내 놓으면 굉장한 이 뭔가 이렇게 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요것만 하고 그만 해야지, 그만 해야지 하는데 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면 아직도 끊이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그 문제들이 보이네요.
[앵커]
벌써 그렇게 된지 15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끊임없이 활동을 하게 되는 어떤 원동력이랄까요?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원동력은 일단 사람인거같아요.
이제까지 만났던 동포들, 그리고 동포 민족 뿐만 아니고 외국인 노동자 관련된 문제도 다뤘었고요.
그러면서 차츰 차츰 개선되가는 사회구조를 보게 되고요.
그 사이 사이 만나는 사람들, 대상들, 그 분들이 저한테 용기를 주고 다시 제가 잘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던 거 같습니다.
[앵커]
그러면 작품들을 사람들이 이렇게 보면서 어떤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뭐를 기억에 담고 갔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인터뷰]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갖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그런 대상들이 주제였기 때문에 그 문제들에서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같이 들여다보자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해결해나가자 라는 좀 메세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앵커]
앞으로 사진속에 담길 동포들의 이야기, 계속해서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외롭고 소외된 동포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입니다.
김지연씨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전시회를 여셨죠?
제목이 조선학교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인터뷰]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고요.
2011년 3월 11일날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옛날에 관동대지진이 떠올랐고요.
그로 인해서 무고하게 학살된 동포들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도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또 누가 타겟이 될까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차별받고 있는 우리 조선학교, 우리 동포들에 대한 관심을 이번에는 가져보고자 지진 피해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앵커]
조선학교라고 하면 조총련이나 아니면 북한과 연관이 있어서 우리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현장에서 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인터뷰]
남한에서는 조총련계 학교라서 해서 더이상 알려하지 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가본 조선 학교는 우리가 함께 같이 가야 할 우리 학교 였어요.
조선 학교는 우리 1세대들이 일본 학교를 다니면서 엄청나게 차별과 모멸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한테만큼은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가르치고자 만든 작은 공부방에서부터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와서 이 학교가 북한 학교냐 라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고요.
같이 이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일본 내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우리 민족성을 지키려고 하고 있는 건지를 같이 들여다보고 우리가 같이 애정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제가 책을 내거나 이번 전시를 할때에 목표였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번 사진 전시회에서 카메라에 담으면서 어떤 모습들을 주로 담으려고 노력을 하셨나요?
[인터뷰]
이분들의 이미지를 잘 찍으려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고요.
그런 이미지들이 한국에서 가져왔을 때 아 다르지 않구나, 우리와 같구나 그런 울림이 있을 반향이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앵커]
사진전과 함께 이번에 사진집도 내셨죠.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이번이 몇번째죠?
[인터뷰]
사진집으로는 다섯번째요.
[앵커]
다섯번째요, 제일 첫번째로 냈던 사진집이 탈북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었거든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인터뷰]
이 사진집인데요.
99년도에 연변 근처에서 만난 탈북 아이들의 이야기에요.
[앵커]
99년도요.
[인터뷰]
99년도만 해도 보통의 매체들에서는 탈북 아이들을 조명하면서 쓰레기더미에서 쓰레기를 주워먹는 아이들이라고 극한적으로 다루던 때였어요.
제가 이 아이들을 막상 만났을때는 아, 우리 아이들이다 라는 느낌이 엄청 강했고요.
그 아이들이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서 목숨을 걸고 남의 땅까지 도망쳐나와서 그렇게 할때는 아, 이거는 동포애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된다, 라는 그런 관점으로 사진을 쭉 담았고요.
사실 이 작업이 제 작업중이 가장 어려웠던 작업인데...
[앵커]
왜 그러나요?
[인터뷰]
아이들이 사실 얼굴을 드러내기가 참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제가 영길에서 한 40일 있었는데 한 20일간은 카메라를 들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사진을 찍히는 순간 목숨과 연결이 되어있다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한 20일 동안은 아이들하고 놀고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하다가 아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것 자체가 현실이구나 라고 해서 그때부터 아이들을 커튼 뒤에 숨기던지 인형으로 얼굴을 가리던지 해서 촬영을 했습니다.
[앵커]
그동안 99년부터 쭉 사진 작업을 하시면서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 거 같아요.
뒤에 보니까 조선학교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고 하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신가 봐요?
[인터뷰]
조선학교가 이제까지 몰랐던 그런 많은 함축적인 것들이 담겨 있는 곳인데 이미 낯선 이방인이 카메라를 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정말 들풀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자라나고 있었고요.
저 학교 안에서의 저의 가장 큰 느낌은 아, 통일의 씨앗을 심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도착한날 비가 내렸는데요.
방사능비라고 한국에서는 휴교를 하고 있었을 때에요.
근데 아이들은 그냥 천진하게 그 비를 맞으면서 뛰어놀고 있는 거에요.
근데 이제 제가 학교 운동장에 자그맣하게 화분을 심어놓은 새싹들을 보면서 이 방사능 비에도 씨앗을 심듯이 우리 조상들은 조선학교에 통일의 씨앗을 심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앵커]
다큐멘터리 사진 쪽으로 들어선게 후회되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인터뷰]
매번 후회를 하죠.
[앵커]
어떤 이유 때문에요?
[인터뷰]
이 아이템 하나 하나들이 다 아파요.
아프고 힘든 작업들이고 그리고 이 대상들이 만나서 행복한 분들이 아니고 그 아픔을 듣고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저는 유지를 해야 되고 그런 과정에서 작업 하나를 끝내 놓으면 굉장한 이 뭔가 이렇게 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요것만 하고 그만 해야지, 그만 해야지 하는데 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면 아직도 끊이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그 문제들이 보이네요.
[앵커]
벌써 그렇게 된지 15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끊임없이 활동을 하게 되는 어떤 원동력이랄까요?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원동력은 일단 사람인거같아요.
이제까지 만났던 동포들, 그리고 동포 민족 뿐만 아니고 외국인 노동자 관련된 문제도 다뤘었고요.
그러면서 차츰 차츰 개선되가는 사회구조를 보게 되고요.
그 사이 사이 만나는 사람들, 대상들, 그 분들이 저한테 용기를 주고 다시 제가 잘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던 거 같습니다.
[앵커]
그러면 작품들을 사람들이 이렇게 보면서 어떤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뭐를 기억에 담고 갔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인터뷰]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갖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그런 대상들이 주제였기 때문에 그 문제들에서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같이 들여다보자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해결해나가자 라는 좀 메세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앵커]
앞으로 사진속에 담길 동포들의 이야기, 계속해서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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