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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을 흔히들 여정에 빗대곤 하죠.
그만큼 길 위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마련입니다.
등장인물이 길을 떠나는 여정을 따라가며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영화를 로드 무비라고 하죠.
오늘 한국영화 걸작선에서는 우리나라 로드무비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1975년작 <삼포가는 길>입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겨울날,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홀로 눈밭을 헤맵니다.
멀리서 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나는데요.
교도소를 막 출소한 정 씨입니다.
정 씨: 불 좀 빌립시다.
서로 친분도 없는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동행 길에 나섭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영달로선 길동무나 삼자는 심산이었죠.
끼니를 때우러 읍내에 도착한 두 사람.
여비도 넉넉지 못한 이들에게 식당 주인이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식당 주인: 가다가 스물 두셋쯤 되고 키가 날씬한 여자가 빨간 저고리를 입고 가는 걸 보거든 캐봐서 좀 잡아 오시오. 내 현금으로 딱 만 원 내리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재촉하던 두 사람은 앞서 식당 주인이 말한 젊은 여성 백화를 마주칩니다.
영달: 참샘에서 뺑소니치는 길이지? 백화: 남이야
영달: 보시라요. 지가 뛰어야 벼룩이라고 안 합디까?
백화를 식당으로 데려가면 돈을 벌 수 있는 상황. 그런데 이 아가씨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백화: 너 치사하게 뚱보 돈 먹자고 나한테 공갈치면 너하고 나하고 다 피 보는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술집 작부 백화의 당돌한 반격에 당황하는 두 사람.
악연으로 만나긴 했지만, 빈털터리 신세에 딱히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세 사람은 또 한 번 길동무가 됩니다.
정 씨: 이리 가면 월출이라는데…
영달: 나야 뭐 꼭 월출로 가야 할 이유는 없긴 하지만, 어떻게 하겠소, 정 씨?
정 씨: 하긴 나도… 백화: 잘 됐구먼.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인연 아니겠소?
그럼 그럼 그럼 그럼. 우리 팔도 유람이나 해봅시다
이렇게 함께 정처 없는 길을 떠나게 된 세 사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동병상련의 처지이니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겠죠.
길을 걸으며 세 사람은 각자의 사연을 한 꺼풀씩 풀어내며 친구가 됩니다.
백화: 화류계 3년에 이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요?
영달: 응?
백화: 헌 속치마, 고무줄 끊어진 팬티, 화장품, 짝 잃은…
영달: 화투장
길을 가던 세 사람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느 상갓집에 문상객을 가장해 들어갑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백화가 그만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 맙니다.
이렇게 '삼포가는 길'은 세 인물을 통해 개발과 산업화의 와중에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의 낙천성을 해학적인 톤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눈밭을 뛰어가는 이 장면에서 이만희 감독은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무음으로 처리함으로써, 세 사람의 관계와 심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여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백화와 영달은 어느새 서로에 대한 은근한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백화: 너무 귀엽게 보이지 말아요. 정들까 봐 무서워
영달: 헛소리 마라. 헛소리.
백화: 우리 정들지 맙시다. 정들면 피 보는 건 여자 쪽이니까
김진규가 연기한 정 씨는 세 사람 가운데서 마치 아버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온화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두 젊은 남녀를 챙깁니다.
정 씨: 색시가 나가서 위로해주구려.
정 씨: 저 사람 고향에 한이 있거나 아니면 돌아갈 수 없는 까닭이 있는 모양이야.
백화: 눈물까지 보이던데요.
정 씨: 놈은 착한 놈 같아. 아직 천진한 데도 남아 있는 것 같고.
돈을 벌기 위해 인근 술집에서 잠깐 일을 하던 백화가 취객들과의 시비에 휘말립니다.
이때 정 씨가 백화의 아버지로 가장해 그녀를 구해내죠.
정 씨: 이 자식아, 이게 무슨 꼴이냐. 이 아비가 널 찾아서 얼마나 헤맨 줄 모르고…
각자의 다른 사연을 가진 세 사람이 마침내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유대감을 갖게 되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영화 '삼포가는 길'은 세 인물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이만희 감독의 연출과 세 배우의 찰진 연기가 어우러지면서 흥미로운 휴먼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스물 한 살에 이 영화에 출연한 문숙은 23살 연상이었던 이만희 감독과 결혼해 화제를 뿌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은 직후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길 위에서 사람과 시대를 포착한 한국 로드무비의 원형, '삼포가는 길'이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그만큼 길 위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마련입니다.
등장인물이 길을 떠나는 여정을 따라가며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영화를 로드 무비라고 하죠.
오늘 한국영화 걸작선에서는 우리나라 로드무비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1975년작 <삼포가는 길>입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겨울날,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홀로 눈밭을 헤맵니다.
멀리서 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나는데요.
교도소를 막 출소한 정 씨입니다.
정 씨: 불 좀 빌립시다.
서로 친분도 없는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동행 길에 나섭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영달로선 길동무나 삼자는 심산이었죠.
끼니를 때우러 읍내에 도착한 두 사람.
여비도 넉넉지 못한 이들에게 식당 주인이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식당 주인: 가다가 스물 두셋쯤 되고 키가 날씬한 여자가 빨간 저고리를 입고 가는 걸 보거든 캐봐서 좀 잡아 오시오. 내 현금으로 딱 만 원 내리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재촉하던 두 사람은 앞서 식당 주인이 말한 젊은 여성 백화를 마주칩니다.
영달: 참샘에서 뺑소니치는 길이지? 백화: 남이야
영달: 보시라요. 지가 뛰어야 벼룩이라고 안 합디까?
백화를 식당으로 데려가면 돈을 벌 수 있는 상황. 그런데 이 아가씨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백화: 너 치사하게 뚱보 돈 먹자고 나한테 공갈치면 너하고 나하고 다 피 보는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술집 작부 백화의 당돌한 반격에 당황하는 두 사람.
악연으로 만나긴 했지만, 빈털터리 신세에 딱히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세 사람은 또 한 번 길동무가 됩니다.
정 씨: 이리 가면 월출이라는데…
영달: 나야 뭐 꼭 월출로 가야 할 이유는 없긴 하지만, 어떻게 하겠소, 정 씨?
정 씨: 하긴 나도… 백화: 잘 됐구먼.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인연 아니겠소?
그럼 그럼 그럼 그럼. 우리 팔도 유람이나 해봅시다
이렇게 함께 정처 없는 길을 떠나게 된 세 사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동병상련의 처지이니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겠죠.
길을 걸으며 세 사람은 각자의 사연을 한 꺼풀씩 풀어내며 친구가 됩니다.
백화: 화류계 3년에 이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요?
영달: 응?
백화: 헌 속치마, 고무줄 끊어진 팬티, 화장품, 짝 잃은…
영달: 화투장
길을 가던 세 사람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느 상갓집에 문상객을 가장해 들어갑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백화가 그만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 맙니다.
이렇게 '삼포가는 길'은 세 인물을 통해 개발과 산업화의 와중에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의 낙천성을 해학적인 톤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눈밭을 뛰어가는 이 장면에서 이만희 감독은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무음으로 처리함으로써, 세 사람의 관계와 심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여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백화와 영달은 어느새 서로에 대한 은근한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백화: 너무 귀엽게 보이지 말아요. 정들까 봐 무서워
영달: 헛소리 마라. 헛소리.
백화: 우리 정들지 맙시다. 정들면 피 보는 건 여자 쪽이니까
김진규가 연기한 정 씨는 세 사람 가운데서 마치 아버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온화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두 젊은 남녀를 챙깁니다.
정 씨: 색시가 나가서 위로해주구려.
정 씨: 저 사람 고향에 한이 있거나 아니면 돌아갈 수 없는 까닭이 있는 모양이야.
백화: 눈물까지 보이던데요.
정 씨: 놈은 착한 놈 같아. 아직 천진한 데도 남아 있는 것 같고.
돈을 벌기 위해 인근 술집에서 잠깐 일을 하던 백화가 취객들과의 시비에 휘말립니다.
이때 정 씨가 백화의 아버지로 가장해 그녀를 구해내죠.
정 씨: 이 자식아, 이게 무슨 꼴이냐. 이 아비가 널 찾아서 얼마나 헤맨 줄 모르고…
각자의 다른 사연을 가진 세 사람이 마침내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유대감을 갖게 되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영화 '삼포가는 길'은 세 인물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이만희 감독의 연출과 세 배우의 찰진 연기가 어우러지면서 흥미로운 휴먼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스물 한 살에 이 영화에 출연한 문숙은 23살 연상이었던 이만희 감독과 결혼해 화제를 뿌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은 직후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길 위에서 사람과 시대를 포착한 한국 로드무비의 원형, '삼포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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