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피플] "딴따라 소리에 사과 요구"...故 신성일, 뼛속까지 영화인

[Y피플] "딴따라 소리에 사과 요구"...故 신성일, 뼛속까지 영화인

2018.11.04. 오후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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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피플] "딴따라 소리에 사과 요구"...故 신성일, 뼛속까지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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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딴따라가 아니다. 그 말을 제일 싫어한다. 1967년도에 한 스탠드바에 들어갔는데 어떤 이가 나를 보고 '딴따라 들어오네'라고 말하더라.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종합예술을 하는 영화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이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나서 한 말이다. 고(故) 신성일은 딴따라이길 거부했다. 뼛속까지 배우였고, 영화인이었다.

고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30분께 전남의 한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며 회복에 힘써왔지만 최근 건강이 악화됐다. 향년 81세다.

이날 오후 1시부터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영정 속 신성일은 하얀 백발에 흰 셔츠를 입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고인의 부인인 엄앵란은 생전 신성일에 대해 "가정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자기는 영화만 하러 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까무러치는 때까지 영화 생각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버텨서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저승에 가서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살길 바란다. 구름 타고 놀러 다니라고 하고 싶다"고 답했다.

고 신성일과 엄앵란은 1964년 '맨발의 청춘'에서 호흡을 맞췄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두 사람의 결혼식을 구경하기 위해 인파가 운집하여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무려 4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두 사람은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Y피플] "딴따라 소리에 사과 요구"...故 신성일, 뼛속까지 영화인

1937년 경상북도 대구 출생인 고(故)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맨발의 청춘' '아낌없이 주련다' '날개' '만추' '안개' '군번 없는 용사'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는 물론 2013년 출연한 '야관문'에 이르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5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그 때문에 한국영화의 산증인이자 그 자체로 역사로 불린다.

회고전 당시 고인은 "향후 삶에 대한 설계가 다 돼 있다"며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또 (제가 사는) 영천에 카페와 스타디움을 만들고 소규모 음악회를 여느 등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그다음은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삶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마지막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유족으로 부인 엄앵란과 장남 석현, 장녀 경아, 차녀 수화 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6일 진행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사진공동취재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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