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편 출연,전례없는 스타"…故신성일이 남긴 것[종합]

"500편 출연,전례없는 스타"…故신성일이 남긴 것[종합]

2018.11.04. 오전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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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스타 신성일이 4일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고(故) 신성일은 1960년대~1970년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반항적이면서도 굵직한 외모는 동시기 배우들과 차별점을 가지며 그를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줬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사흘 만에 대구로 이사한 그는 1956년 경북고를, 1966년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1997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2000년 경희대 대학원 사회학과를 수료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간 신성일은 3000대 1 경쟁률을 뚫고 당시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이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의 신성일을 있게 한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다. 이 영화는 당시 서울에서만 36만 명을 동원하며 유례 없는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히트작을 탄생시켰다.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으로 인기가 가장 뜨겁던 시기 영화에 함께 출연한 엄앵란과 결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신성일의 외도로 오랜 기간 별거했다.



신성일의 출연작품 편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영화 524편, 연출 4편, 제작 6편, 기획 1편에 참여했다. 특히 고인은 1967년에는 한해 51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해 제작된 한국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영화 사랑이 지극했던 그는 관련 단체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장, 1994년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 2002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춘사나운규기념사업협회장 등을 맡았다.



영화계 인기를 발판 삼아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 또 다시 낙선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삼수 끝에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은 고인의 조카다.



유족은 부인 엄앵란과 장남 석현, 장녀 경아, 차녀 수화 씨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당 30호실이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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