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교육 후기
YTN 경력 취재 기자 | 이준영
최종수정: 2016년 11월 04일 금요일
나도 YTN 人이다.
“준영아. 전화연결 준비해!“ 사건팀 바이스 강진원 선배의 지시였다.
입사 이틀 만에 현업에 투입됐다. 전국이 폭우 피해로 물난리가 벌어졌던 날, 3번의 전화연결과 리포트를 제작했다. 9통의 제보 전화를 받았고 그 가운데 3건을 취재해 기사에 반영했다. 정신없이 취재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 날 녹초가 된 채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 사건팀 라인에 배치돼 새벽부터 기민하게 움직였다. 제보도 확인하고 마약 단속 경찰 기사를 리포트로 만들어 제작했다. 오후에는 또 다른 사건을 취재하면서 동시에 제보를 확인했다. 그렇게 둘째 날도 온 몸이 파김치가 돼 잠들었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으로 서부지방법원에서 중계를 타던 날, YTN 기자의 업무 강도를 제대로 경험했다. 3번의 중계방송을 하면서 간간이 단신 기사를 썼다. 또 김수민, 박선숙 두 의원의 영장 발부와 기각을 대비해 4건의 속보를 미리 작성했고 전화연결과 리포트도 사전에 준비했다. 택시를 타고 회사에 어떻게 복귀했는지 모를 정도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렇게 2주를 보내면서 서서히 몸이 적응해 갔다.
그리고 나서 시작된 내부교육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함께 입사한 경력 동기들의 얼굴에서도 내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봤다. 이것이 내부 교육에 대한 내 첫 느낌이었다. 하지만 편집부와 영상부, 기술국 등 선배들의 교육을 들으면서 내 생각은 점점 바뀌었다. 각 파트에서 직원들이 어떻게 근무하고 있고 하나 하나가 모여서 YTN이라는 보도전문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특히 IMF를 겪으면서 봉급을 받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한 선배들의 이야기는 YTN에 대한 그들의 애사심과 YTN 뉴스를 지켜 온 노력에 감동했다. 지금은 모두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최근까지 현장을 누비던 기자였고 YTN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선배들이기에 존경심을 가졌다. 후배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따뜻한 시선과 격려가 느껴졌다. 사건팀에서 2주 동안 선배들에게 지적당하며 알게 모르게 주눅 들었던 마음도 조금씩 아물었다. 무엇보다 상암동 사옥이 가진 의미를 배우고 선배들이 일하는 공간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소속감이 생겼다.
“내 회사고 내가 일하는 공간이다.”
사내 교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남산 서울 타워였다.
YTN 소유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회사 직원으로 방문했을 때 가졌던 감정은 남달랐다. 단순히 전망대의 의미를 넘어 지상파를 포함한 우리나라 방송 역사의 중심이자 송신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또 복합문화공간으로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YTN 방송이 나아가야할 방향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YTN은 뉴스 전문 채널로써 단순히 방송사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상징적인 것이 남산 서울 타워에 대한 서울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부합된다고 본다. 특히 그 상징성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우리나라 교민들이 신뢰하는 뉴스의 가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지난 2008년 YTN은 아픔을 겪었다.
노동조합 선배들과의 자리에서 당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상세히 들었고 이해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YTN은 어렵게 위기를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들도 있다.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 어느 방송 언론사 보다 내부 직원들의 단합력은 강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방송사처럼 노조가 두, 세 개로 분리되지 않았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새 노조가 생기지도 않았다. 회사와 후배를 생각하는 임원들의 마음이나 언론 가치를 지키려는 노조 선배들의 마음 모두 공감했다. 중요한 것은 회사를 아끼는 건 선후배가 모두 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YTN의 가치를 고민하고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 갈지 연구하고 다 같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YTN인이라는 것,
그것이 내가 2주간의 사내 교육을 통해 배운 명제다.
변해야 산다.
“그러니까 YTN 뉴스 스탠드 좀 잘 만드세요.” 네이버 뉴스를 편집하는 큐레이터들이 교육을 받으러 온 기자들에게 한 얘기였다.
충격이었다. 전 직장에서 산업부 기자로 1년 반 동안 근무했지만 삼성이나 현대 등 어떤 대기업 홍보 임원이나 부장으로부터 일 잘하라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현재 20대에서 40대에 걸친 대다수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YTN을 포함한 언론사들이 뉴스 유통에 있어서 주도권을 플랫폼 사업자에게 빼앗긴지 오래다. 공공성을 지닌 언론 매체 특성 상 정부의 과잉보호 속에 성장해 온 주류 언론사들은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했고 그 허점을 IT기업들이 파고 든 결과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언론은 위기다.
기존의 시청률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고 댓글로 반응한다.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인 SMCRE에 비춰 봐도 그렇다. 메시지를 전달받은 청자가 피드백을 주는 것 역시 인터넷이 더 활발하다.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린다. 기사에 대한 의견부터 평가까지 다양한 반응이 댓글로 쏟아져 나온다.
그에 반해 방송은 일방적인 매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와 내용은 명확해도 청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기 어렵다. 사람들을 모으고 의견이 오가는 곳은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그 곳에 수익이 창출된다. 따라서 요즘 같은 모바일 중심 사회에서 언론은 스스로 IT 플랫폼이 되든지 아니면 플랫폼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뉴스를 제공하는 장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네이버 뉴스 서비스에 도전장을 낸 페이스북은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용자가 검색해서 원하는 뉴스를 찾아가는 것이 네이버 방식이다. 반면 페이스 북은 개발자가 입력한 수많은 알고리즘 변수를 통해 개개인이 원하는 뉴스를 ‘척척’ 알아서 제공한다. 이때 뉴스 기사가 링크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제휴 언론사가 해당 기사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하면 이용자가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 ‘인스턴트 아티클’이다. 형식은 달라도 의도는 네이버와 별반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도 언론사로부터 뉴스 유통권을 차지하겠다는 거다.
가벼운 콘텐츠로 10대와 20대 이용자들을 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피키캐스트도 ‘디스커버’란 뉴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페이스북과 피키캐스트의 뻔한 속셈을 알지만 별수 있나? 타 언론 매체와 경쟁하려면 이들을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만 안하면 손해 볼 거라는 우려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과 손잡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또 억울하다. 그래도 인정해야 한다.
“참신한 뉴스가 없어요. 언론사 마다 똑같은 뉴스만 나오니까 심심해요.”
또 네이버에서 한 얘기다. 점잖게 기자들을 꾸짖었다. 어쩔 수 없다. 한국 언론의 취재 문화가 대부분 출입처 중심으로 돼 있다. 물 먹는 걸 두려워하다 보니 출입처를 벗어나지 못한다. 보도자료 중심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만드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네이버에는 똑같은 주제와 이슈를 다룬 수십여 개 매체 기사들로 가득찰 것이다. YTN 기사 역시 많고 많은 비슷한 내용의 기사 속에 파묻힐 수밖에 없다. 결국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내용을 취재해야 한다. 구글에서 알려준 데이터 스토어는 좋은 취재 자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내용이 한정적인 만큼 기자들의 기획력과 취재원을 통한 새로운 뉴스가 필요하다. 또 탐사보도나 데이터 저널리즘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최고의 언론을 자부했던 뉴욕 타임즈는 종이 신문을 폐지하고 이미 온라인 언론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기자들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했다. 글 대신 정보를 그래픽으로 시각화한 이른바 ‘인포그래픽’으로 말하고 써야했다. 모든 것이 이용자 편의주의에 철저하게 입각한 시스템이었다. 황용석 교수가 보여 준 미국 언론의 인포그래픽 기사들은 보는 내내 그저 “와”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미 수년 전 지나간 뉴스를 어떻게 편집하고 재구성 하느냐에 따라 새 뉴스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스톤 마라톤 대회 테러 사건 당시 촬영된 사진 한 장, 그리고 그 폭발 현장에서 마라톤 경기에 참가했던 선수들 개개인의 이름을 클릭하자 당시 상황에 대한 각자의 인터뷰가 흘러 나왔다. 놀라웠다. 사람들은 반드시 새 뉴스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과거 뉴스라도 그것을 어떻게 심층적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특종보다 더 큰 이목을 끄는 뉴스가 될 수 있다. YTN은 20여 년 넘게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인 현장을 늘 기록해 왔다. 그러한 영상자료와 취재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청자, 이용자들이 원하는, 궁금해 하는 뉴스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언론은 위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YTN에 수많은 제보가 봇물 터지듯 들어오고 있다.
시청자들에 대한 YTN의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안타깝지만 높은 브랜드 가치가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모바일 중심 사회에선 이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끌어 오냐가 관건이다. CJ E&M이 SBS 등 지상파를 제치고 광고수익 1위를 차지 한 것은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수년 전부터 적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투자로 자체 제작 능력을 키워 온 것은 지금과 같은 콘텐츠 중심 사회가 올 것에 대한 혜안과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5년, 10년 뒤 미디어 환경은 지금보다 더 빠르고 큰 변화로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모바일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통합 시청률 제도가 언젠가 머지않아 도입될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로 시청자와 온라인 이용자들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류 미디어 기업도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네이버와 다음과 달리 싸이월드를 앞세운 네이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언론은 한 차례 경험했다. 모두가 알면서도 안심하다가 네이버에게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빼앗긴 사실을.
/ 사진 : YTN PLUS 서정호 팀장 hoseo@y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