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4가지 정황...경찰이 지운 104일의 골든타임 [한방이슈]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제주에서 실종됐던 37살 장미란 씨가, 그 짧은 거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실종된 지 104일 만이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을, 왜 석 달 넘게 찾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실종된 장미란 씨가 아니라, 신고를 받은 경찰관에게 있었습니다.
담당 경찰관은 신고 당일, 시스템에 장 씨를 '교통사고 사망'으로 적어 넣고 사건을 지웠습니다.
겪은 적도 없는 사고로, 살아있을지 모를 사람을 서류상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겁니다.
지난 5월 12일 밤, 장미란 씨는 휴대전화만 든 채 슬리퍼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고, 그대로 연락이 끊깁니다.
사흘 뒤 장 씨의 남자친구가 실종 신고를 합니다. 신고를 접수한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30대 부 경장은, 신고 당일 두 시간 반 만에 사건을 종결합니다.
신고자에게는 "장 씨와 연락이 닿았다, 본인이 소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믿기 어려웠던 남자친구는 이후 또다시 경찰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종결'로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두 사람 사이엔 통화 기록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 경장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장 씨 자료를 삭제하면서, 사유로 '교통사고 사망'을 기재했습니다.
사건이 닫힌 사이 CCTV는 보존기한이 지나 지워졌고, 휴대전화 신호도 끊겼습니다. 골든타임이 통째로 사라진 겁니다.
부 경장은 지금도 "분명히 연락했다"고 주장합니다. 최종 판단은 수사와 재판의 몫입니다.
경찰관 한 명의 게으름이었을까요? 그렇게 보기엔 걸리는 게 너무 많습니다.
하나, 하지도 않은 통화를 했다는 거짓 보고.
둘,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구체적인 허위 사유.
셋, 자료를 아예 지워버린 삭제 행위.
넷, "가족한테 알리지 말라"는 반복된 당부.
하나만 있었다면 실수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네 가지가 겹칩니다.
경찰도 이 대목을 단순 태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 경장에게 직무유기뿐 아니라 공전자기록 위작,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적용한 것 자체가, 수사기관이 '몰라서 놓친 것'이 아니라 '알고 꾸민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태만은 보통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적극적으로 꾸미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정황이 가리키는 출발점은 분명합니다. 최소한 '들키지 않으려는 손질'이 있었느냐, 그 조작이 어디를 향했느냐가 이 사건의 진짜 질문이 됩니다.
가능한 해석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 업무 회피입니다. 처리하기 싫어서 서류상으로만 '해결'해 목록에서 치웠다는 겁니다. '사망'을 입력하면 자료가 삭제되고 관리 대상에서 사라진다는 점을 이용했다는 해석입니다.
둘째, 은폐입니다. 초기 대응의 문제를 덮으려 했거나, 추적 자체를 차단하려 했다는 겁니다. 통화 기록을 꾸미고, 자료를 지우고, 가족의 확인 경로를 반복해 끊은 것은 단순 회피보다 '추적 차단'에 가깝다는 해석입니다.
다만 이 둘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습니다. 귀찮아서 닫은 것도 이미 고의이고, 회피와 은폐는 한 사건 안에서 겹칠 수 있습니다.
두 해석을 가늠할 단서는,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 경장은 지난 7월 60대 남성 실종 신고도 "무사하다"며 종결했고, 이 남성은 재신고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남성의 유족 역시 "가족한테 알리지 말라"는 같은 말을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같은 화법이 반복됐다면,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패턴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건 아직 유가족의 진술이고, 종결을 은폐했을 가능성과 경찰관이 실종자들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후자를 뒷받침할 근거는 현재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규모를 알고 나면, 해석의 무게추가 한 번 더 흔들립니다.
경찰이 확인해 보니, 부 경장이 약 1년 5개월간 담당한 실종 신고 대부분이 부 경장 혼자 종결한 '셀프 종결'이었습니다. 처음엔 200여 건으로 파악됐다가, 국회에 보고된 건수는 298건까지 늘었습니다.
이 건이 모두 허위 종결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부 보고나 확인 없이 담당자 혼자 끝낸 사건이 그만큼이라는 것이고, 경찰은 지금 실종자와 신고자에게 일일이 연락해 허위가 섞였는지 전수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양쪽으로 읽힙니다. 한편으론, 한 사람이 수백 건을 제동 없이 닫을 수 있었다는 통제 공백을 보여줍니다. 다른 한편으론, 17개월간 사건을 자판기처럼 닫아온 사람이라면 특정 사건을 겨냥한 은폐라기보다 '늘 하던 대로 닫았을' 가능성, 즉 관성적 처리 쪽 무게도 함께 커집니다. 어느 쪽이든, 개인의 악의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장미란 씨와 60대 남성 사건은 모두 부 경장이 야간 당직 때 접수했습니다. 당직 일지를 혼자 작성하면 이를 검증할 장치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사가 답해야 할 물음은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하나, '교통사고 사망'을 넣으면 자료가 삭제된다는 걸 미리 알았는지,
둘,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이 몇 건에서 반복됐는지,
셋, 삭제된 자료에 복구 가능한 흔적이 남았는지.
성인 실종은 법률이 아닌 지침으로만 다뤄지고, 자진 귀가가 많아 초기 판단이 어렵다는 현실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겪지도 않은 교통사고를 지어내 사람을 지우는 일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부 경장은 시신이 발견된 24일 체포적부심으로 한 차례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인 25일,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를 들어 부 경장을 구속했습니다. 직무유기, 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입니다.
신병은 확보됐지만, 정작 밝혀야 할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교통사고 사망'이 게으름이 부른 실수였는지, 무언가를 지우려는 조작이었는지 말입니다.
지금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경찰이 만든 가짜 죽음이 진짜 실종을 서류에서 지웠고, 두 사람 모두 끝내 숨진 채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유진(leeyoo9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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